서울 종로구 도심에 있는 운현궁은 조선 말 국왕의 부친이자 집권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사저로 당대 최고 권력자의 집이라는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운현궁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각 공간은 공적인 영역에서 점차 사적인 영역으로 전개되어 간다.
흥선대원군의 집무실인 ‘노안당’은「ㅜ」자형 평면으로 외부를 향해 열린 배치를 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드러내며 실질적인 국가정책이 결정되던 공적 공간의 역할을 한다. 명성황후의 왕비 수업이 이루어졌던 ‘노락당’은 행각에 둘러싸여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통제된 공간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운현궁에서 유일하게 초익공이 장식되어 다른 영역과는 차별화된 위계를 가진다.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거처인 ‘이로당’은 폐쇄적인「ㅁ」자 정방형 평면과 내향적인 중정을 통해 안채의 사적 공간을 나타낸다. 이는 닫힌 공간으로 사랑채인 노안당과 명확히 대비되는 개념이다.
노락당 건너편으로 운현궁의 일부였던 ‘양관’이 보인다. 이 서양식 건축물은 시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흥선대원군의 운명처럼 근대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전통의 해체가 시작됨을 알리고 있다.







REFERENCE
김왕직 저『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2007) | 동녘
운현궁 정밀실측조사보고서(2015) | 서울특별시 역사문화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