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동 윤씨 가옥 친일 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의 저택 답사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의 저택 벽수산장이 있던 옥인동에는 옥인동 윤씨 가옥이라는 전통 한옥이 있다. 순정효황후의 생가로 알려져 1977년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20년 후인 1997년 해지되는 사건이 있었다. 답사 후기와 함께 문화재 지정 해지 과정에서 밝혀진 놀라운 사실을 이번 글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옥인동 윤씨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 기본 정보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34길 28 남산골 한옥마을
원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47-133
문화재 :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지정해지)
지정일 : 1977년 3월 17일
해지일 : 1997년 2월 20일
연면적 : 224.79㎡
건축연도 :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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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

윤덕영(1873년 12월 27일 ~ 1940년 10월 18일)은 경술국적 8인 중 한 사람으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이다. 이완용에 가려져 있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으뜸이라 할 만큼 악질 매국노이다.

윤덕영 사진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사진 중앙).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이 자의 매국 행위 중 유명한 사건들이 있다. 하나는 “낙선재 창덕궁에 있는 사대부가 양식 조선왕실 한옥 답사“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대한제국 마지막 어전회의의 순정효황후 옥새 사건으로 순정효황후에게 옥새를 빼앗아 한일병합조약에 날인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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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 창덕궁에 있는 사대부가 양식 조선왕실 한옥 답사

또 다른 사건은 고종의 방일 추진 사건이다. 국권피탈 이후 이태왕으로 격하되어 덕수궁에 머물던 고종의 방일을 추친한 사건으로 고종이 결사반대하자 다른 매국노들은 포기하였지만, 윤덕영만이 끝까지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협박하여 이에 굴복한 고종이 아들 순종을 일본으로 건너가도록 하게 한 것이다.

창덕궁 인정전 앞 순종
창덕궁 인정전 앞의 순종(사진 중앙). 좌측에 이토 히로부미가 있고 그 뒤의 인물이 윤덕영이다.
출처 –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결국 순종은 1917년 방일 길에 올라 일본 역대 왕들의 사당과 묘소에 참배함으로써 전 세계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것을 각인시킨 사건이 되었다.

망국의 조약인 한일병합조약과 실질적인 일제의 종속을 선언하는 순종의 방일 등 국권피탈의 상징적인 사건들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성사시킨 윤덕영을 두고 일본인은 물론 매국노들 사이에서도 친일파 중 친일파로 불렸다고 하니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벽수산장과 옥인동 윤씨 가옥의 비밀

벽수산장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윤덕영의 저택으로 벽수는 윤덕영의 호이다. 옥인동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2만 평에 가까운 대지에 지어진 저택으로 인왕산을 등지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무후무한 스케일을 가진 대저택이다.

서울의 휴일 벽수산장
영화 서울의 휴일에 배경으로 나온 벽수산장 양관.
출처 – 영화 서울의 휴일(1956년)

조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 혹은 아방궁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하며, 옥인동 윤씨 가옥이 바로 이 벽수산장에 속해있는 집으로 처음에는 순정효황후의 생가로 알려지며 문화재 지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소실댁”이라 불리던 윤덕영 첩실의 집으로 밝혀지면서 문화재 지정이 해지되는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은 현재 두 곳에 존재한다. 하나는 옥인동 47-133에 있는 원형과 또 다른 하나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된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남산골 한옥마을의 윤씨 가옥으로 고증에 충실하여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남산골 한옥마을 옥인동 윤씨 가옥
남산골 한옥마을 광장에서 본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에 있는 원형을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하지 못한 이유가 부재의 손상이 심해서라고 하는 데 개인적인 추측으론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목구조의 특성상 해체와 재조립이 자유롭고 손상이 심한 부재는 교체하는 것이 가능한데 굳이 원형을 두고 다른 곳에 같은 건물을 복원할 이유가 없다.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만살분합.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협문을 통해 입장하면 보이는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만살분합.

최근 문화재 지정 해지 이후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던 원형에 대한 리모델링 계획이 발표되어 2025년에 일반에게 공개하여 개방할 계획이라고 하니 한번 기대해 볼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옥인동 윤씨 가옥

옥인동 윤씨 가옥은 “ㅁ”자 형태의 단일 평면에 사랑채와 안채, 문간채로 공간을 구분할 수 있다. 정문이 있는 문간채로 가기 위해서 남산골 한옥마을 광장에서 입장하는 것보단 남산골 전통정원에서 옥인동 윤씨 가옥의 계단을 통해 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며 원형과도 부합한다.

옥인동 윤씨 가옥 계단
남산골 전통정원에서 대문으로 가기 위한 계단.

남산골 한옥마을 광장에서 입장하게 되면 정문이 아닌 광장 측 작은 협문으로 입장하게 된다. 남산골 전통정원 쪽으로 나와 정문으로 입장하는 것을 추천한다.

문간채

남산골 전통정원에 있는 연못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언덕 위의 옥인동 윤씨 가옥이 보인다. 그곳에 있는 화강석 계단을 오르면 정문이 있는 문간채가 나온다.

옥인동 윤씨 가옥 문간채
옥인동 윤씨 가옥 문간채.

삼량가의 문간채는 두 칸 규모로 대문과 광이 각각 한 칸씩 차지하고 있고 기단은 화강석을 가공한 외벌대 장대석으로 사다리형 초석이 사용되었다. 가구 구성으로는 사모기둥에 납도리와 대들보가 결구된 민도리식 가구로 연목과 부연으로 구성된 겹처마 평대문이다.

옥인동 윤씨 가옥 문간채
안채측에서 바라본 옥인동 윤씨 가옥 문간채.

좌우에 안채와 사랑채의 부엌과 누마루와 이어져 있으며 대문 밖으로 보이는 남산골 전통 정원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안채

대문을 통해 입장하여 정면을 바라보면 이곳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안채가 보인다. 안채는 “ㅁ”자 배치의 옥인동 윤씨 가옥 정면과 우측면을 차지하고 있으며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몸채에 정면 일곱 칸, 측면 한 칸의 온돌방과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정면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칸짜리 온돌방 2개소가 있고 우측에 한 칸짜리 온돌방 4개소와 두 칸짜리 부엌 1개소가 있다. 기단은 화강석을 가공한 장대석 세벌대 기단이며 부엌과 문간채 측 온돌방은 외벌대 기단으로 초석은 사다리형 초석이 사용되었다.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부엌
옥인동 윤씨 가옥 안채 부엌.

일고주칠량가의 안채는 정면에 세 칸 규모의 퇴가 있으며 온돌방을 따라 아자교란이 있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가구 구성으로는 사모기둥에 창방과 직교한 초익공이 대들보를 지지하고 있고 창방 위 소로가 장혀를 받아주며 굴도리가 사용되었다. 연목과 부연으로 구성된 겹처마 건물로 익공식 공포가 사용된 점이 특징이다.

사랑채

“ㅁ”자 배치의 옥인동 윤씨 가옥의 좌측을 차지하는 것이 사랑채이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 한 칸 규모의 대청이 공간을 명확히 구분해 주고 있으며 쪽마루가 설치된 한 칸짜리 온돌방 3개소와 누마루와 이어진 두 칸짜리 온돌방이 있다.

옥인동 윤씨 가옥 사랑채 온돌방
옥인동 윤씨 가옥 사랑채 온돌방.

처음 옥인동 윤씨 가옥에 입장하기 위해 남산골 전통정원에서 바라보면 보이는 부분이 사랑채의 누마루로 화강석 기단 위 사다리형 초석이 사용되었고 사모기둥에 창방과 직교한 초익공과 장혀와 굴도리, 대들보가 결구된 오량가 가구로 연목과 부연으로 구성된 겹처마 건물이다.

옥인동 윤씨 가옥 누마루
옥인동 윤씨 가옥 누마루.

외부와 면한 계단 쪽 하부는 사괴석과 벽돌로 쌓은 화방벽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언덕 위의 팔작지붕이 매우 화려하고 권위적으로 보였다.

옥인동 윤씨 가옥을 둘러보고

옥인동 윤씨 가옥은 세벌대 기단 위 “ㅁ”자 배치로 좁은 안마당에 서서 높은 기단 위 건축물을 바라보면 건물에 둘러싸여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소실댁”이라는 이름처럼 은밀한 느낌을 주는 일고주칠량가 가구로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유일하게 민간 주거 건물에 공포가 장식되어 더욱 화려해 보인다.

옥인동 윤씨 가옥 아자교란
옥인동 윤씨 가옥 사랑채 아자교란.

높은 기단과 일고주칠량가의 가구 구성, 공포를 사용한 점, 화려한 평난간 장식 등 건물의 격식이 상당히 높아 순정효황후의 생가로 오해를 살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매국노의 첩실 집 따위가 황후의 생가로 착각하게 할 정도이니 안타까운 역사의 한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지로 천장과 벽, 바닥이 마감된 온돌방
한지로 천장과 벽, 바닥이 마감된 온돌방.

옥인동 윤씨 가옥은 그 시대 상류층의 건축 양식을 생생히 재현하고 있으며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근대사를 엿볼 수 있는 주택이다. 문화재 지정 해지 과정을 통해 역사적 진실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며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사회 지도층 한 사람의 선택이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는 이런 집이 탄생하지 않도록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만들어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