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당 창덕궁 후원에 위치한 조선왕실 한옥 방문후기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된 창덕궁에는 우리나라 정원의 정수이자 최대 규모의 정원인 후원이 있다. 비밀스러운 정원이란 뜻을 담은 비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사대부 주택 형식을 띤 왕실 한옥 연경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글에서 자연을 담은 건축 연경당과 그것에 담긴 비밀을 풀어보려고 한다.

창덕궁 연경당 전통 창호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 측에서 바라본 안채와의 연결부.

창덕궁 연경당 기본정보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창덕궁
지하철 : 안국역 3번 출구
입장료 : 8,000원(창덕궁 + 후원)
문화재 : 대한민국 보물 제1770호
지정일 : 2012년 8월 16일
궁능유적본부 창덕궁 홈페이지 바로가기

창호를 통해 안채에서 사랑채를 지나 선향재까지 보인다.
창덕궁 연경당 안채 측에서 바라본 사랑채와의 연결부.

입장에 인원 제한이 있어 해설자를 동반하지 않는 자유 관람 시기에 맞춰 예약 후 방문했으며 인터넷 예약은 신청자가 많아 쉽지 않지만, 현장 판매 티켓은 온라인보다는 여유가 있는 듯 했다. 입장료는 1인 기준, 창덕궁 입장료 3,000원과 후원 입장료 5,000원을 합하여 총 8,000원이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은 조선의 두 번째 왕궁으로 유교사상에 의한 철저한 계획으로 건축된 경복궁과는 달리 유연함을 가진 궁궐로 조선시대 국왕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이자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중건되기까지 정궁 역할을 하였다. 이 창덕궁의 북쪽에 있는 정원이 창덕궁 후원이다.

창덕궁 연경당 화계에 있는 농수정
창덕궁 연경당 화계의 농수정.

우리나라 최대의 궁중 정원으로 궁원, 금원, 북원, 비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창덕궁이 불타면서 후원 또한 많은 훼손이 있었으나, 이후 창덕궁이 중건되며 왕실 도서관 규장각을 비롯한 여러 전각과 누각, 정자 등이 신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연경당

후원에 온 목적은 연경당을 보기 위해서이다. 후원 전체에 모든 에너지를 쓰기에는 너무 넓고 볼 것이 많아 연경당을 제외한 다른 장소는 가볍게 관람하고 지나쳤다.

연경당 화계 농수정의 처마
연경당 화계 농수정의 처마.

연경당은 낙선재와 마찬가지로 사대부 주택 형식을 모방한 왕실 한옥으로 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의 연회를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왕실 가족들의 사적인 공간으로 궁궐 내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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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이 살던 곳

그러나 창덕궁과 창경궁의 옛 모습을 담은 동궐도의 초기 연경당과 지금의 연경당엔 많은 차이가 있어 현재의 모습은 고종 때 대대적인 개축으로 이루어졌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정확히 언제 현재의 모습 갖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장락문 앞에 서서

정문인 장락문에 도착하여 그 앞에 서서 연경당을 바라보았다. 언제 심어졌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장락문 바로 옆에 서 있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창덕궁 연경당 장락문과 그 옆 느티나무
창덕궁 연경당 정문인 장락문과 느티나무.

연경당에는 총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하나는 장락문 옆의 느티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수인문 옆 느티나무, 또 다른 하나는 연경당의 정중앙에 위치한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들은 연경당의 건축 배치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장락문 앞에 서서 바라보면 이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모두 보인다.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20~40m까지 자라며 지름은 3m에 이른다고 한다. 천 년 이상을 사는 나무로 장수를 상징하며 마을 앞 정자나무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나무이다.

행랑마당에서 본 수인문 옆 느티나무
창덕궁 연경당 행랑마당과 수인문 옆 느티나무.

단순히 상징물로서의 역할뿐만 아닌 연경당의 설계와 배치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연경당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연경당 건축의 비밀과 느티나무

세 그루의 느티나무 중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연경당 정중앙에 위치한 느티나무이다. 대지의 고저차가 있는 화계를 제외한 연경당 권역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정문인 장락문과 동일 축선에 놓여 있어 장락문 앞에 서서 바라보면 솟을대문 지붕 너머로 느티나무가 바로 보인다.

연경당 정중앙에 있는 느티나무
창덕궁 연경당 정중앙의 느티나무.

이 느티나무를 기점으로 동쪽으로 사랑채, 서쪽으로 안채가 배치되어 있고 사방으로 행랑채와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분리하고 있는 내부 담장 또한 일직선이 아닌 이 느티나무를 의식하여 일부러 한번 꺾어서 가로 지르고 있다.

연경당 마당에 있는 담장과 세 번째 느티나무
창덕궁 연경당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 시켜주는 담장.

느티나무가 연경당 건축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하여 여러 관련 자료를 찾아봤으나 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연경당이 건축되고 느티나무를 심었는지 아니면 이 나무가 있는 자리를 기점으로 연경당을 건축했는지 알 수 없다.

창덕구 연경당 사랑마당.
창덕궁 연경당 사랑마당.

느티나무가 먼저 있었다면 나무를 이용하여 배치계획을 했다는 것일 테고 느티나무를 나중에 심었다면 처음부터 느티나무를 심을 생각으로 계획했다는 말이 된다. 후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자연을 소재로 삼은 연경당의 건축에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수직과 수평

건축을 하는 사람에게 수직과 수평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낙선재에 감탄한 이유도 시대와 재료를 감안하고서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부재와 마감 및 장식재들의 정교하고도 섬세한 공예미와 그것을 아름답게 조화시킨 전통 건축술에 있었다.

연경당의 전통 창호.
창덕궁 연경당의 기울어진 부재와 창호.

연경당은 낙선재의 그것에 비하면 투박함이 느껴지고 수직 수평조차 맞지 않는 요소들이 자주 보인다. 처음엔 왕실 한옥치고 정교함이 부족하다 생각했지만, 후원이라는 장소와 자연을 주제로한 건축으로서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모두 이해되는 부분이다.

연경당 사랑채 누마루.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 누마루.

자연이 만든 것에는 수직과 수평이 없다. 연경당이 후원에 녹아들 듯 조화로운 이유도 투박한 듯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예미를 뽐내는 낙선재가 후원에 있었다면 상당한 이질감이 있었을 것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 연경당

자연이 어쩌느니 환경이 어쩌느니 하며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자연을 주제로 한 건축에 대해 말한다. 자연을 말하지만, 그 내용은 기계적이고 교과서적으로 들릴 뿐, 정말 자연의 건축을 이해하고서 하는 말이 아니기에 그것에 대한 공감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창덕궁 연경당 안채
창덕궁 연경당 안채.

연경당의 미학은 투박함과 자연스러움에서 비롯된다. 다른 왕실 한옥과 달리 연경당은 정교함보다는 자연과의 조화를 더 중시한 건축이다. 이번 연경당 답사로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고 답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

한옥 답사를 다니며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한옥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재료로 가장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연경당은 이 한옥 건축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