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세권과 건축가의 의미 그리고 북촌 한옥역사관

요즘 아무나 건축가를 자칭하는 사람이 많아 건축가라는 단어의 의미가 상당히 훼손되고 변질되어 버렸다. 건축가는 건축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대가(大家)로 인정받고, 자신의 건축 철학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뜻한다.

르 코르뷔지에 Villa Savoye
프랑스 파리 푸아시에 위치한 “Villa Savoye”. 1929년, 지구 반대편에서 정세권과 한 살 차이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모더니즘 건축을 선도하며 그의 근대 건축 철학을 담은 주택 ”Villa Savoye”를 건축하였다.

건축가란?

건축가라는 단어를 알기 쉽게 정의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면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건축을 알고 있으며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을 떠올릴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그 영향이 널리 퍼져 대중들이 작품은 알지 못하더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다다오 같은 사람을 건축가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 초고층 건축 삼일빌딩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에 위치한 삼일빌딩. 1970년,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인 건축가 김중업이 우리나라 최초 초고층 빌딩인 ”삼일빌딩“을 설계하여 건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중업이나 김수근 같은 인물을 건축가라 할 수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들 이후로 우리나라에 건축가로 불릴만한 인물은 없으며 앞으로도 나오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건축가라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북촌 답사로 알게 되었다. 바로 건축가 정세권이다.

북촌 한옥역사관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계동길을 따라 쭉 올라오다 보면 건축가 정세권에 대해 알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북촌 한옥역사관이다.

북촌 한옥역사관은 서울시 공공한옥으로 종로구 계동 25번지에 있으며 현재 북촌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일제강점기 도시형 한옥과 그것을 만들어낸 건축가 정세권에 대해 소개하는 공간이다.

북촌 한옥마을 북촌 한옥역사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25번지에 위치한 북촌 한옥역사관.

북촌 한옥역사관에서는 건축가 정세권에 대한 상설 전시와 비정기적인 체험행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체험행사에 관한 정보는 북촌 한옥역사관 인스타그램에 게재되고 있다.

북촌 한옥역사관 기본정보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4길 3
지하철 :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634m
운영시간 : 10:00 – 18:00
정기휴무 :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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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세권

건축가 정세권은 1888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지내다 1919년 일제강점기 경성으로 불리던 서울로 이주하여 1920년 건설회사인 건양사를 설립한다.

건축가 정세권
건축가 정세권.

일제강점기, 청계천을 기점으로 북쪽에는 한국인이 남쪽에는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인의 거주 공간이 부족해지자 일본인들의 북쪽 진출이 시작되었으나, 한국인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건양사를 비롯한 건설업계에서 민간 주택 건설 사업에 진출하였다.

정세권

1888년 출생
1905년 경상남도 진주 백일장 장원
1908년 기자능참봉
1910년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면장
1915년 덕명저축계 설립
1919년 경성(서울) 이주
1920년 건양사 설립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본부 상임이사
1930년 신간회 상무집행위원
1931년 조선물산장려회관 건립
1932년 장산농업실습장 개시
1935년 조선어학회에 화동 199번지 2층 양옥 기부
1940년 덕명간이학교 실습을 위한 논 기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제에 고초를 당함
1943년 수감 후 3만 5천 평 대지를 일제에 강탈당함
1949년 조선어학회 사건 관계자 친목회인 십일회 활동
1950년 한국전쟁 중 부상
1954년 경상남도 고성군으로 낙향
1962년 삼천포기본사조합 발기
1965년 9월 14일 별세(향년 77세)
2016년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

정세권의 건축

정세권의 건축 방법은 규모가 큰 귀족들의 저택을 분할하여 여러 채의 작은 도시형 한옥을 지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여 많은 한국인을 거주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의 첫 출세작인 익선동 한옥마을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누동궁”이 있던 자리에 지은 도시형 한옥이다.

전통 한옥 투시도
전통 한옥 엑소노메트릭. 전통 한옥에서는 선택받은 특권층만 거주할 수 있었다.
도시형 한옥 투시도
정세권의 도시형 한옥 아이소메트릭. 규모가 큰 귀족들의 저택을 분할하여 여러채의 도시형 한옥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게 하였다.

출세작 익선동 한옥마을에 이어 대표작인 북촌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서울 전역에 걸쳐 도시형 한옥 단지를 건축하여 한국인의 영역을 지켜나갔으며, 매년 서울 전체 주택 공급량 1,700여 채 중 300채를 정세권이 담당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통 건축의 근대화

건축가 정세권에 대해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 전통 건축의 근대화에 있다. 시간이 갈수록 밀집화되는 도시에서 대중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복잡한 전통 목구조의 규격화 및 간략화를 통해 전통 건축의 근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건양사의 건양 주택 평면도
건축가 정세권의 도시형 한옥 “건양주택”의 평면도.

수천 년간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전통 한옥이 대중을 위한 건축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며 정세권이 건축가로 불려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가(大家)의 돈 쓰는 방법

몇 해 전 일본 뉴스에 거의 전 재산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되는 우리 돈 100억 정도의 금액을 학생들을 위해 기부했다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인들에게 비싼 학비가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뉴스를 보고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조선어학회 십일회 사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분들이 친목을 위해 1949년 결성한 십일회의 사진.

건축가 정세권 또한 수많은 도시형 한옥을 공급하며 발생한 이익을 독립운동 후원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조선물산장려회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 유족에게 금전적 지원을 하였으며 조선어학회 활동을 지원하며 사무실도 기부하였다.

독립운동 지원이 빌미가 되어 일제에 의해 전 재산을 빼앗기고 건양사의 건설 면허도 취소되는 등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잃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활동 또한 그가 건축가로 불려야 하는 이유이다.

당대 정세권에 대한 비판과 건축이 만들어낸 문화의 힘

당대에는 집 장사라 폄훼하며 건축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귀족들의 저택을 허물고 도시형 한옥을 지은 정세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던 듯하다.

반대로 경복궁마저 헐리는 상황에서 귀족들의 몇몇 저택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들 그것은 남산골 한옥마을의 예처럼 서울시 빈터로 이전되어 테마파크화되고 그 땅은 개발 논리에 의한 건물이 들어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도시형 한옥 단지
서울 도시형 한옥 단지. 서울을 세계에 알리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었다.

규모가 크고 조형적으로 아름답기는 하지만 어떠한 감동도 없는 귀족들의 저택과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형 한옥 중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지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북촌과 익선동 한옥마을의 가치는 역사적인 몇몇 건축물이 아닌 한국적인 건축이 만들어낸 문화의 힘에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가 아닌 건축가 정세권

지구 반대편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태동하여 근대 건축을 시작을 알리던 20세기 초, 복잡한 전통 목구조의 규격화 및 간략화를 시도하여 전통 건축의 근대화를 이끌고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한옥을 대중화시킨 것은 건축가로서 매우 큰 업적이라고 느꼈다.

북촌 한옥역사관 입구
북촌 한옥역사관 입구.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단어 “집”

정세권의 영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북촌과 익선동의 한옥 단지는 서울 관광업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며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북촌 한옥역사관 실내
건축가 정세권의 도시형 한옥 “건양주택”과 같은 형태를 한 북촌 한옥역사관. 기둥 보 구조의 이점을 살려 실내를 구획하는 벽을 제거하여 전시관으로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부동산 개발업자로 …” 위키백과에 정세권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근대 건축의 재료와 공법이 아닌 우리 전통 재료와 공법으로 민족의 암울했던 시기 가장 한국적인 근대 건축을 이끌어간 건축가 정세권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명칭으로 불러야겠다.